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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SS] Interview for "The Murderer Next Door". (2)


[SS] Interview for "The Murderer Next Door".

너희가 막말을 아느냐 | 2010/12/20 10:22

사례 P8101, 남성, 19세

● 누구를 죽이고 싶었습니까?
망할 놈의 짐승새끼가 하나 있죠.

● 왜 죽이고 싶었습니까?
원래부터 주는 거 없이 밉상인 놈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내가 만만했는지 유독 날 걸고 넘어지면서 날이면 날마다 시비를 걸었죠. 습자지를 빼앗아가질 않나 발을 걸질 않나 남의 샤미센 줄을 풀어서 낚시를 하질 않나 옷을 찢질 않나 뜬금없이 허리춤을 더듬질 않나. 일일이 생각해내기도 지겹습니다. 그래도 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4년 정도 험한 데서 굴렀다고 다소나마 진중해져 있었죠. 적어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턱도 없는 착각이었지만요. 피를 온통 뒤집어쓴 꼬락서니로 다짜고짜 사람을 나꿔채서 풀숲으로 끌고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죠. 주는 거 없이 밉상인 놈이었지만 적어도 동지이자 전우로서 나는 그놈을 신뢰했었습니다. 아군으로서는 그 자식만큼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놈도 드물었으니까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하죠. 싫어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놈이 나를 떠밀어서 연못 속에 처넣었을 때도,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으르렁대다 사과 한 마디 없이 가 버렸을 때조차 난 그놈을 미워하지 못했어요. 그 빌어먹게 예뻤던 은발이 내 세계에 처음 들어온 그 순간부터 내 시선이 어디를 맴돌았는지는 그래, 내가 제일 잘 압니다. 헌데 그 녀석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보세요.
그놈은 날 마치 무슨 물건처럼 다뤘습니다. 길 가다가 푼돈 주고 산 서푼짜리 매춘부에게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중에 보니 어깨뼈가 빠져 있더군요. 더구나 제 욕심만 실컷 채우고 나서 그놈이 맨 처음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처녀도 아닌 주제에 더럽게 빼네'. 그놈 말고 대체 어느 눈삔 작자가 같은 거 달린 사내자식한테 이딴 짓을 한다고? 심지어는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어젯밤도 와서 저 좋을 대로 싸지르고 제멋대로 돌아갔죠. 그 미친놈의 눈에는 내가 무슨 성능 좋은 자위도구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짐승의 앞발톱에 속수무책으로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도 이것보다는 낫겠습니다.
죽이고 싶은 이유? 왜 아니겠어요? 그날 이후로 그놈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왜 죽이지 못했죠?
이봐요, 사람이 사람을 결국 죽이지 못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사례 P8102, 남성, 20세

● 누가 당신을 살해할 거라 생각합니까?
글쎄, 내 목을 따고 싶어하는 작자가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그 빌어쳐먹을 백발이겠죠.
만만한 장난감이 남 손을 타는 게 어지간히 배알 꼴리는 모양인데, 제가 대체 뭐라고 개지랄인지. 웃기지도 않아.

● 그가 당신을 어떻게 살해할 거라 생각하세요?
방법이야 많지 않습니까. 전장에 나갔을 때 등뒤에서 찌르면 누가 알겠어요.

● 왜 그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죠?
손 닿는 데 있는 더치와이프가 이것뿐이라서요?

● 어떤 경우 그가 당신을 죽였을 것 같습니까?
사실상 시간 문제입니다. 내가 죽든지 그놈이 죽든지 하겠죠.

사례 P1010, 남성, 22세

● 누구를 죽이고 싶었습니까?
소꿉친구요. 동창이고, 전우고, 동료고, 뭐 이를테면 애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왜 죽이고 싶었습니까?
난 그 애가 요만한 일곱 살 꼬맹이였을 때부터 알았어요. 그 애는 내게 있어 안온했던 한순간과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연결고리입니다. 더구나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음에 쩔대로 쩐 전장에서 생살을 뜯어먹으며 자란 나한테 하얗고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그 애는 일종의 경이였어요. 언제나 눈에 밟히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유치할 정도로 집적거렸죠. 아마도 좋아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꼴 좀 보시라죠. 그 망할 녀석은 온갖 머저리들과 뒹굴고 천인놈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다리를 벌리고 있다고요!
돌이켜 보면 우린 시작부터 어긋났습니다. 그 애는 내가 안기 전에 딴 놈의 손부터 탔어요. 분김에 거칠게 다뤘던 건 사실이지만 그 후로 놈은 보란 듯이 더욱 엇나가고 아무나 제 잠자리로 끌어들였습니다. 두들겨 패도 소용이 없고 그놈을 품은 사내들을 걸리는 대로 베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대체 몇 명을 죽였더라? 다섯 명까지는 셌는데 그 뒤로는 모르겠네요.
난 그 앨 말리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했지만 이젠 포기하기 직전입니다. 요즘은 하루에도 골백 번씩 그 애의 가느다란 목을 잡아 비트는 게 얼마나 쉬울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이 미친 짓거리도 훨씬 빨리 끝나겠지요.

● 왜 죽이지 못했죠?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 애는 여전히 한없이 투명하고 예쁘거든요. 환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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